기자(Giza) 사막으로 향하던 아침,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물감을 푼 듯 새파랗던 하늘은 무표정한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사막의 비라. 빈곤한 상상력으로는 도무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사막에 비가 내리면 모래 폭풍이 잠들까? 질퍽해진 모래에 낙타가 미끄러지지는 않을까? 떨어지는 비를 보며 가늠할 수 없는 사막의 풍경에 대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사이 비가 그쳤다. 비가 내린 후에도 사막은 불변의 모습이었다. 신부가 조심스레 베일을 걷어 내듯 조금씩 얼굴을 드러낸 이집트 제3의 도시 기자는 현대의 도시라고는 믿기 힘든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삼각으로, 혹은 네 팔로 버티며 이곳을 지켜온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때문일까. 이곳만은 세월이 완벽히 비껴간 것 같았다. 인력거와 건초더미, 모래를 뒤집어쓴 모스크와 다리를 지나 메나 하우스(Mena House)로 향했다. 이집트가 유럽의 식민지였을 때부터 이곳을 지켜온 메리어트 메나 하우스는 그레이트 피라미드가 한 눈에 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닿을 듯 가까이에서 이집트 최고의 유네스코 세계 유산을 감상하며, 아랍의 전통적인 전채 모듬 요리인 메쩨(Mezzeh)를 주문했다. 팔라펠과 치즈튀김, 소시지, 소고기야채롤이 갓 짜낸 열대과일 주스와 함께 선보였다. 주스의 층이 어찌나 정교하게 구분되어 있던지, 꼭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컬러 샌드’를 유리컵 속에 쌓아놓은 것처럼 보였다. 빻은 고추를 넣은 매콤한 팔라펠을 한 입 베어 물고 주스를 한 모금 들이켰다. 매운 맛과 단 맛의 조화가 꼭 무섭고도 로맨틱한 아라비안 나이트 같았다. 그제야 야외 수영장 물에 비친 피라미드의 그림자가 들어왔다. 수상의 피라미드가 수중의 피라미드와 완벽히 대칭을 이루고 있는 모습. 전율이 흐르는 장관이었다.
울퉁불퉁 낙타 등에 올라앉아 마주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기자 고원 곳곳에 흩어진 유적지를 둘러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뭘까. 낙타를 타고 걷는 것 아닐까? 그 옛날 아라비아 반도 내륙에 살았던 베두인(Bedouin)들이 그러했듯 말이다. 베두인의 지혜를 빌어 낙타를 타고 건너는 사막 트레킹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사막의 길잡이가 되어줄 가이드 아메르가 낙타 두 마리와 말 한 필을 이끌고 나타났다. 야자수처럼 껑충한 낙타는 키가 족히 4미터는 되어 보였다. 베두인 의상을 입은 도우미의 도움을 얻어 낙타 등에 오르니 크기가 다른 피라미드는 물론, 뽀얀 먼지 속 기자 시내까지 한 눈에 들어왔다. “낙타의 움직임에 그냥 몸을 맡겨요. 낙타를 잘 타는 지름길이랍니다.” 말에 올라탄 아메르의 가르침대로, 낙타의 출렁임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그렇게 걸은 지 삼 분이나 지났을까?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에 거대하게 서 있으리라 생각했던 피라미드가 눈 앞에 거대한 석상으로 펼쳐졌다. 3개의 피라미드 앞에 당도했을 때 상상을 뛰어넘는 피라미드의 크기와 규모에 그대로 압도당하고 말았다. 이집트를 여행하며 만나게 되는 유적은 BC 3,000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에 만들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집트에는 총 30개의 왕조가 번성했는데 이중 피라미드가 만들어진 건 3왕조 때, 대규모 피라미드가 건설된 시기도 바로 3~4왕조 때다. 특히 4왕조의 파라오인 쿠푸(Khufu)왕과 카프라(Khafra), 멘카우라(Menkaura)왕 시대에 지어진 피라미드는 대부분 기자 고원의 사막에 모여 있다.
밤하늘의 빛과 그 마법의 빛을 닮은 장신구들
피라미드 산 사이로 지는 강렬한 노을 감상을 끝으로 낙타 트레킹을 마쳤다. 스핑크스를 마주하고 있는 광장에는 하얀 철제의자들이 빼곡히 놓여 있다. 야간에 펼쳐지는 ‘라이트 앤 사운드’ 쇼를 보기 위한 자리다. 1798년 이집트 원정을 나섰던 나폴레옹은 피라미드를 보고 ‘차마 말할 수 없는 것’을 보았다며 평생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밝히지 않았다. 220년이 지난 지금, 무수한 여행객들이 피라미드를 보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4,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자의 네크로폴리스는 여전히 불가사의한 존재로 남아 있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자, 나폴레옹의 수수께끼를 풀고자 해가 지고 난 후 호텔 루프트 톱에 앉았다. 고요한 낮과 달리, 사막의 밤은 바람이 거세다. 잠시 후 명상 음악으로 들어도 무방할 정도로 차분한 배경 음악과 함께 피라미드에 하나 둘 불이 켜진다. 정면을 응시하는 스핑크스에도 불이 들어온다. 칠흑 같은 사막의 어둠 속, 찬연히 빛을 발하는 고대 유적이 들려주는 이집트 이야기는 기자에서 놓치지 말아야할 하이라이트다. 나일강 하류에서 번성한 고대 이집트 문명은 수 세기를 앞서 있었다. 장신구로 몸을 치장하던 문화도 이미 그때 시작되었다. 쇼가 끝나고, 다채로운 이집트 장신구 구경이나 할까 싶어 머큐어 카이로 르 스핑크스 호텔( Mercure Cairo Le Sphinx Hotel)로 향했다. 카르나크 신전에서 이름을 딴 카르나크 주얼리(Karnak Jewelry)에서 사막의 푸른 밤하늘을 닮은 블루스톤 고양이와 황금색 클레오파트라 상을 영접(?)했다. 화려함 일색인 상점을 자랑스러운 듯 소개하던 숍의 오너가 지니 램프를 연상시키는 황금색 주전자와 찻잔에 애플시나몬 티를 담아 대접해주었다. 향긋한 티는 이집트식 ‘웰컴’이라고 했다. 고대 이집트에서 보석과 장식품은 왕족과 귀족들의 필수품이었다. 수메르인을 능가했던 이집트의 섬세한 세공에 감탄하는 사이, 사막의 달이 기울고 있었다.
Karnak jewelry
16 Pyramids, 1 Alexandria Desert Rd,
Kafr Nassar, Al Haram, Giza Governorate
Tel : +20233776444
www.karnakjewellery.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