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VAR ISLAND
FILLED WITH LAVENDER FLOWERS

라벤더 향기 가득한 섬, 흐바르

Hvar island
크로아티아에서 섬 여행은 빠질 수 없는 하이라이트다. 그래서 떠났다. 스플리트 항을 출발한 야드롤리냐호가 50분 남짓을 달려 우리를 내려놓은 곳은 라벤더 향기 가득한 흐바르 섬이었다. 흐바르인들이 이태리식으로 ‘피아자’라 부르는 스테파나 광장에는 커피와 아이스크림으로 오후의 노곤함을 이기려는 사람들이 자리를 점하고 있었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러 이곳이 아니면 절대 맛보지 못할 ‘라벤더’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라벤더는 어디까지나 ’향’인 줄로만 알았는데, 신기하게도 진짜 라벤더 ‘맛’이 났다. 라벤더가 아로마테라피 뿐 아니라 푸드테라피의 훌륭한 재료가 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흐바르에서 7킬로미터쯤 더 들어가면 브루세라는 작은 마을을 만날 수 있다. 마을이 끝나는 도로 표지판 근처에는 엽서에서나 보던 보라색 라벤더 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흐바르의 전망도 잘 보인다. 토스카나나 프로방스가 부럽지 않은 진풍경이었다. 브루세의 라벤더는 6월 중순에서 말까지가 피크로, 6월 말이 되면 모두 잘라내기 때문에 이후에는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벨로 그라블(Velo Grablje) 마을 사람들은 라벤더의 추수가 끝나는 6월 말이면 라벤더 축제를 연다. 피고 지는 꽃들을 위해 축제를 열다니, 무척 낭만적인 작별 인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흐바르의 좁은 골목을 헤집고 들어가, 작지만 위대한 이 섬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그윽하게 라벤더나 로즈마리 향을 풍길 것만 같은 사람들을 말이다.
Meet빨간 지붕 마을에 사는 사람들 #1
아가베 레이스의 계승자

베네딕트 수도원의 수녀들

베네딕트 수도원(Benedictine Convent)의 수녀들은 100년 넘게 아가베 선인장에서 채취한 섬유를 원사로 사용해 레이스를 떠 왔다. 이를 남다른 ‘스킬’로 부를 수도 있겠지만, 실제 뜨는 과정을 면밀히 관찰한 결과 레이스 니팅(lace knitting)은 예술보다 과학이나 수학에 훨씬 더 가까웠다. 스무 살에 수도원에 들어와 아가베 레이스 뜨는 법을 배운 아나 수녀는 레이스 뜨기보다 실 짜기가 훨씬 어려운 과정이라고 한다. “실을 짜낼 준비가 되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요. 먼저, 아가베 선인장에서 쓸 만한 줄기를 골라냅니다. 그 줄기를 잘라 길쭉한 얇은 실을 일정 두께로 세밀히 뽑아내지요. 실을 뽑을 때는 두께가 같도록 섬세하게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건조한 북풍이 불 때는 뜨개질을 하지 않습니다.
레이스가 흐트러질 수 있거든요.
대신 다습한 남풍이 불 때 뜨개질을 합니다.
그래야 레이스가 견고해지니까요.
아가베 레이스의 전통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현지 선원들이 테네리페에서 식물 섬유로 뜬 레이스를 흐바르로 가져오면서 시작되었다. 베네딕트 수도원의 수녀들은 오랫동안 이를 연구했고 레이스가 어떻게 완성되는지 발견했을 뿐 아니라 자신들만의 문화유산으로 재창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태양을 중심에 놓는 패턴, 꽃을 상기시키는 패턴 등 수녀들은 새롭고 독특한 패턴들을 끊임없이 개발해 나갔다. 아이디어에는 제한을 두지 않지만, 전통을 지키는 데에는 엄격하다. 아가베 레이스는 이제 흐바르의 상징으로 섬 전체에서 이를 볼 수 있다. 손바닥보다 작은 코스터 크기가 300유로 정도, 4~6인용 테이블보 크기의 레이스는 수천, 수만 유로를 호가한다. 인내와 침묵의 시간이 완성한 레이스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유네스코 무형 문화 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Meet빨간 지붕 마을에 사는 사람들 #2
위대한 자연에 대한 오마주

주얼리 디자이너 Tanja Curin

Tanja Curin Jewelry
Kroz Grodu 6, 21450, Hvar
Tel: +385 21 742 218
가장 궁금한 질문. 왜 자그레브가 아닌 흐바르 섬에 숍을 연 거죠?
흐바르는 아버지의 고향이에요. 어린 제게 집시의 피를 심어주신 분이죠. 휴가철이면 아버지는 가족을 데리고 이곳으로 오셨고, 덕분에 섬 전체가 제게는 놀이터였어요. 조개껍질이나 나뭇가지들을 주워다 팔찌, 목걸이 등을 만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주얼리 디자이너로서의 DNA가 그때 잉태된 것 같아요. 당연히 제 숍은 흐바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흐바르야말로 제 아이덴티티니까요.

주얼리들이 하나같이 독특해요. 영감의 원천이 궁금합니다.
우리끼리 농담처럼 얘기하곤 합니다. 타냐 추린은 젯세터들을 위한 주얼리가 아니라 ‘집세터(Gypsetter, 집시에 젯세터를 합친 개념)’들을 위한 주얼리라고. 저는 6개월 이상 한 곳에 머무는 일이 없습니다. 자이푸르에 살다가 비엔나에 살다가 다시 흐바르로 돌아오기도 하지요. 집시의 영혼으로 만나는 세상 모든 것들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흐바르 섬의 가장 큰 매력을 꼽는다면?
흐바르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꼽히는 섬입니다. 올드타운은 물론이고, 스타리 그라드나 라벤더필드도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자연환경과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삶의 방식도 매력적이지만 예술을 대하는 태도는 존경스러울 정도지요. 흐바르보다 완벽한 소우주는 세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흐바르는 작지만 매혹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섬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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