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가 김시영의 온도

불과 흙의 호흡이 빚어내는 세계

어린 시절 연금술사를 꿈꾸던 김시영 작가. 불과 흙이 빚어내는 작품으로 꿈을 이어갔다.
비록 금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지금은 그보다 귀한 흑유를 빚어내고 있다.
산에서 영감을 찾고 여행에서 작품을 만나는 그의 삶을 만났다.
‘산’이라는 놀이터, ‘흙’이라는 장난감
가평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김시영 작가에게, 산은 곧 어린 시절 그의 놀이터이자 삶의 터전이었다. 지천에 널린 흙과 바위 그리고 돌멩이는 그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었다. 그렇게 흙과의 인연은 자연스럽게 피어났다. 색이 다른 돌멩이를 보면 그저 신기했고, 그 원리가 궁금했다. ‘왜 이 돌은 이런 색을 띨까?’ 어릴 적 품었던 궁금증은 작품 활동을 하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불과 흙 그리고 그 둘의 거친 인연이 만들어낸 자연의 작품이라는 것. 먼 옛날 화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낸 불이 돌의 색을 변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린 시절 그가 품었던 무지갯빛 꿈 중 하나는 바로 연금술사였다. 책에서 얼핏 보았던 연금술이라는 것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집 근처에는 산이, 그리고 그 산에는 흙이 널려 있었기에, 금을 만드는 일도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때 꾸었던 연금술에 대한 동경이 지금의 그를 만들어낸 꿈의 씨앗이 아니었을까. 대학에 입학한 후 그는 산악 동아리 활동에 매료되어 전국 방방곡곡 산을 찾아 누볐다. 심지어 1983년에는 알프스산맥 원정길에 나서 한 달간 산속에서 지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조난을 당하며 위험에 빠지기도 했지만, 산은 그렇게 그의 삶 속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산에는 흙이 있고 돌이 있다. 그래서 지금도 산에 올라가 멍하니 시간을 보내곤 하는데, 이는 매일 빠짐없이 이뤄지는 그의 ‘루틴’이다.
흑유, 색의 다양성을 품다
김시영 작가는 흑유의 매력을 색의 다양성에 두고 있다. 그저 다른 도자기들과는 다른 검은색의 특별함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흑유의 매력을 전할 때 늘 사용하는 그의 말 속에는 색의 다양성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그 다양성은 단순하게 정해진 다양한 색을 일컫지 않는다. 불과 흙이 빚어내는 알 수 없는 변화, 그 다채로움이 바로 그의 작품의 매력이기 때문이다.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물감을 섞으면 물감이 검게 변하는데,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해봤던 그 단순한 법칙 속에 오묘한 색의 매력이 담겨 있다.
흑유는 청자나 백자와는 확연히 다르게 다양한 색을 표현한다. 그 색이 발현되는 이유는 바로 두껍게 칠하는 유약에 있으며, 그에 더해 높은 온도까지 올려 작품을 탄생시키는 불의 힘에 있다. 유약을 두껍게 칠한 흙의 작품이 고온의 열 속에서 녹아내리며 다양한 색의 옷을 입고 재탄생하는 것이다. 흙의 종류에 따라 발현되는 작품의 색도 천차만별이다. 철분이 많은 흙은 붉다 못해 적색을 띠기도 한다. 그렇듯 오묘한 색의 변화는 그를 지금도 산으로 이끌고 있다. 보다 다양한 흙을 찾아야만 하고, 그 흙이 빚어내는 색을 발견해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검은색에는 많은 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 포함된 색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도자기를 시작하면서 15년간 불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 도자기를 만드는 일은 불을 다루는 일이기에, 상온에서 다루는 예술과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불의 예술은 인간의 계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계산으로 다룰 수 있는 영역은 더더욱 아니다. 불확실성에 결과를 맡겨야 한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불확실성을 즐길 줄 아는 자만이 도자 작업을 할 수 있다. 흑유를 빚는 작업은 더욱 그렇다. 15년간 불에 대한 연구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 불확실성 때문이다. 그저 온도만 맞추면 해결될 문제는 더더욱 아니었다. 도자기를 흔히 흙과 불의 예술이라고 표현한다. 흙으로 빚고 불로 구워내야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탄생한다. 물론 둘 다 중요하지만 불의 중요성이 7할에 달할 정도로 더 중요하다고 그는 전한다. 세월이 훌쩍 흐르고, 어느덧 도자 작업을 시작한 지 35년이 넘었다. 비로소 불의 불확실성을 즐기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35년을 다뤘지만, 결국 불의 ‘불확실성’을 즐기게 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불을 가지고 노는 것 또한 불을 내 마음대로 조절하는 것이 아닌 불확실성을 그저 겸허히 수용하는 것이다. 불의 불확실성이 작품에 마침표를 찍는, 그 과정을 즐기고 결과를 받아들일 뿐이다. 이제 그는 불의 불확실성 속에서 작품을 즐기고, 스스로 자유를 찾고 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작품의 세계, 그것이 곧 인생을 닮았기에.
“검은색에는 많은 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 포함된 색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작품 활동으로 이어가는 여행의 묘미
대학 시절부터 시작한 산악회 활동은 작품 활동을 하는 그의 일상에 큰 활력이 되고 있다. 여행을 떠날 때도 산에서 영감을 얻고 도자기 재료로 사용할 흙을 찾았다. 가장 즐겨 찾는 곳은 작업실 인근의 팔봉산이다. 수려한 산세로 산악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지만, 그에게는 작품 활동에 영감을 불어넣는 산소와도 같은 곳이다. 그렇기에 여행을 떠날 때도 자연이 주는 영감을 호흡하고, 자연이 빚어낸 작품에 귀를 기울인다. 그가 즐겨 찾는 홍천강 역시도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다. 물속에는 인제, 원통에서 흘러 내려오는 형형색색의 자갈들이 찬연히 빛난다. 작품에 혼을 불어넣는 그에게는 자갈 하나하나가 소재 그 자체다. 그렇기에 그에게 일상은 매일 새로운 여행이며, 그 속에서 그는 오늘도 작품을 발견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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